입만 열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고 외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.
보훈 관련 단체들은 6·25전쟁 때 우리를 침략한 북한군과 중공군의 선동 작곡가인 공산주의자 정율성을 기념하는 사업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.한·중 수교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‘무찌르자 오랑캐라며 중국을 적대시했다.
이래저래 광주는 또 아프다.그러다 보니 ‘공산주의자 정율성 띄우기가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.그런 중국과 경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구동존이(求同存異)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.
마음숏폼 빠진 뒤 영화관 못가죠?당신의 뇌.정율성의 생가가 있는 광주시와 남구.
그러나 26세가 되던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중국인민해방군으로 6·25전쟁 때는 국군과 맞섰다.
※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.최혁 남도역사포럼 대표 더 중앙 플러스관점의 관점 +尹정부 역대급 ‘세수펑크야당 이중플레이도 문제다유료 전문공개대체 명품 가방이 뭐길래김여사 눈치 보다 꼬인 檢사랑이냐.
거실만 보면 안다계획대로 사는 모범생 비밀더 중앙 플러스VOICE:세상을 말하다내가 쌌지만 정말 심하네지독한 그 냄새.구동존이란 공통적인 것을 찾아 우호의 폭을 넓히고 정치·안보 등 민감한 문제는 뒤로 미뤄두자는 것이다.
정율성이 중국 공산당원이었으며 인민해방군으로 6·25전쟁에 참전한 사실은 외면했다.매국노 이완용도 젊은 시절에는 조선과 우리 민족을 살리려 애쓴 민족주의자였다.